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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난티 타임즈

KOREA, MARCH~APRIL 2026

나는 왜 깊이 있는 디자인을 찾게 되었을까

글 정재형《나는 브랜딩을 호텔에서 배웠다》저자

'무대 위에서 주목받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 말 한마디에 장면이 바뀌는 사람, 그게 내가 동경하던 ‘멋진 사람’의 형상이었다. 그 열망은 지독했다.
주목을 받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미친 짓도 불사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렇게 호텔을 세우겠다며 멀쩡히 다니던 회사를 박차고 나온 지 벌써 6년 차다드라마 <미생>에서는 "회사 안은 전쟁터지만 밖은 지옥"이라고 했다.
직접 겪어보니 그 말은 틀렸다. 이곳은 지옥보다 더 지독하다.

누군가 내게 "6년 전으로 돌아갈래?"라고 묻는다면,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답할 것이다. '아니, 절대 안 돌아가.'

브랜드 디자이너로서 나는 무엇을 팔아야 했을까. 디자인의 범주는 단순히 시각적인 것에 머무르지 않는다. 브랜드가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과정을 설계하는 일, 그것이 디자인이다.
나는 그 본질을 증명하기 위해 별의별 사업에 다 뛰어들었다. 카피라이팅부터 마케팅, 심지어 건축업과 공간 임대업을 거쳐 지금의 로스터리에 이르기까지.
많은 시도가 사라졌고, 현재 내 곁엔 새로 기획한 로스터리와 작은 브랜딩 회사 하나가 남았다. 이 길의 끝에 결국 호텔이 있지 않을까 믿으면서.

수많은 시행착오와 풍파를 겪으며 ‘디자인’에 대한 생각도 변했다. 미감이 좋다고 사업이 잘되는 것은 아니었다.
감각적이지 않아도 수익을 잘 내는 브랜드는 분명 존재한다.
직접 브랜드를 운영하며 깨달은 것은 ‘숫자와 감각 사이의 균형’을 잡는 일이 지독하게 어렵다는 사실이다.
숫자를 쫓으면 미감이 깨지고, 감각에 치중하면 숫자가 비어버린다.

고통스러운 고뇌 끝에 탄생한 결과물이 고객에게 전달되고, 고객이 공감의 지표인 ‘결제’로 보답할 때.
비로소 그 균형이 잡히는 순간이라 믿는다. 결국 디자인이란 주어진 현실 안에서 최선의 경험을 설계해 전달하고, 고객은 숫자로 응답하는 과정이다.
심미성도 중요하지만 ‘어떤 경험을 남길 것인가(감정)’, ‘왜 이 경험을 전달하는가(철학)’, ‘무엇으로 기억되고 싶은가’에 대한 고민이 닿아야 비로소 깊이 있는 디자인이 나온다.
그리고 이 깊이에 일관성과 지속성이 더해질 때, 브랜드는 비로소 ‘고유의 짙은 개성’을 갖게 된다.

지난해 10월, 간절하게 ‘쉼’이 필요했다. 잡념을 씻어내는 수영, 지친 몸을 달래는 사우나, 맛있는 음식,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바다.
그 모든 조건을 떠올렸을 때 머릿속을 스친 곳은 ‘아난티’였다. ‘새로운 여정’, ‘전혀 다른 경험’,
그리고 무엇보다 <조용하고 한적하지만 심심하지는 않은>이라는 그들의 문장이 내 마음을 정확히 꿰뚫었기 때문이다.

아난티 앳 부산 코브에 들어서는 순간, "역시는 역시"라는 감탄이 나왔다. 로비로 향하는 길목부터 "자, 지금부터 진짜 아난티의 시작이야"라고 속삭이는 듯했다.
기장의 푸른 바다, 자연을 닮은 유려한 곡선의 인테리어, 바다를 조망하는 욕조와 압도적인 층고.
여기에 합리적인 미니바 가격과 앱을 통한 편리한 서비스까지, 모든 경험이 매끄럽게 이어졌다.

특히 수영장이 인상깊었다. 하얀 나무를 형상화한 구조물 덕분에 영화 <아바타> 속 신비로운 숲에 들어온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수영과 사우나로 몸을 정돈한 뒤, 적당히 심심해질 즈음 마주한 ‘이터널 저니’는 별미였다.
아난티의 시선으로 큐레이션 된 책과 굿즈들은 여행의 깊이를 더해주었다.
쏟아내는 여행이 아닌, 채워지는 여정이었다.

그곳에서 평소라면 눈길도 주지 않았을 식음 분야의 책 <오늘 브로콜리 싱싱한가요?>를 집어 들었다. 뜻밖의 선물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거대한 아난티 마을 속에서 느낀 이 특유의 매끄러움과 일관된 취향은 1박으로 끝내기에 못내 아쉬웠다.
나도 모르게 ‘나도 이곳의 회원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불쑥 고개를 들었다.

아난티는 모두가 "안 된다, 어렵다"고 말하는 영역에 도전하며 10년 넘게 자신들의 신념을 지켜왔다.
그 지속성이 아난티만의 농밀한 개성을 만들었고, 그 여정에 공감한 고객들이 숫자로 화답했다.
이것이야말로 그들이 일궈온 ‘디플리 디자인(Deeply Design)’의 실체일 것이다.

글을 시작하며 말했던 ‘무대 위에서 주목받는 사람’은 한순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나 자신이 타인에게 어떤 영감과 영향을 줄 수 있는지 끊임없이 고찰하고, 그 과정을 지켜봐 온 사람들이 숫자로 답해주는 ‘균형의 시간’이 필요하다.
일관성과 지속성을 가지고 묵묵히 나아가다 보면, 나의 계절도 무르익는 시점이 오지 않을까.

아난티에서의 경험을 빌려 적어본 지극히 개인적인 이 기록이, 당신에게도 잠시나마 흥미로운 영감이 되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