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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난티 타임즈

KOREA, MARCH~APRIL 2026

아난티 코브라는 낯선 도시

낯선 도시에 도착한 여행자의 마음으로
여기가 좋은 이유 : 내가 사랑한 취향의 공간들 저자 선아키

건축을 예술처럼 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구축적인 기술로서 이해하는 사람들도 있을 테지만, 건축은 어쩌면 사람들의 경험을 빚는 작업인지도 모른다.
어떤 건축은 아주 강렬한 목적을 위해 관성적인 규칙을 버리고 새로운 길을 개척한다. 푸른 동해 바다를 향한 땅이라면, 무릇 바다를 향해 나아가려는 욕심을 품기 마련이다. 아난티 코브의 이야기다.

바다, 바다, 다시 바다
부산 기장군에 처음 와보는 것도 아닌데, 아난티 코브의 단지 안에 들어서자 낯선 여행자의 기분이 되었다.
거대한 백색의 빌딩 사이에서 새로운 도시에 도착한 것만 같은 생경함. 비정형 곡선의 터널을 지나는데, 마치 다른 세계로 진입하는 통로인 것처럼 느껴진다.
아난티 코브가 여행객을 환영하며 낯선 도시에 들어섰다고 알리는 방식이다.
1층에 리셉션이 있는 줄 알았더니, 아난티 코브는 곧장 사람들을 꼭대기 층인 10층으로 올려 보낸다. 의아한 기분으로 한 발을 내딛는 순간 알아챈다. 아, 이 풍경을 보라고 10층으로 올려보냈구나.
수평선을 두고 바다와 하늘밖에 안 보이는 창. 명치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속이 뻥 뚫린다. 체크인을 위해 꼭 들러야 하는 리셉션을 바다를 만나게 하는 장치로 이용한 것이다.
10층에는 실내수영장인 맥퀸즈 풀, 레스토랑 맥퀸즈 그릴 앤 바, 맥퀸즈 라운지까지 줄지어 자리한다. 바다, 바다, 다시 바다.
키를 받아 객실 층으로 내려간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고개를 돌리면 여전히 바다뿐인 풍경이 기다린다. 의자 딱 두 개만 놓인 복도. 객실 문을 열자 테라스 너머로 또 바다.
심지어 욕조에 몸을 담그고도 바다가 보인다. 객실 안에서조차 바다를 향한 집요함은 여전하다.

아난티 타운, 바다로 향하는 길목의 마을
바다를 뻥, 뻥, 뻥 시원하게 보여주었으면서 정작 바다로 향하는 길목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작은 건물들을 세워 골목길을 만들어 두었다.
건물 한 채에 샵이 하나씩. 비정형으로 배치된 건물들은 마치 조약돌을 모아 둔 것처럼 규칙이 없어 보인다.
골목을 따라 카페, 맥주집, 편의점, 편집샵, 갤러리를 지난다. 미니어처 마을 같아서 아난티 타운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숙박객들은 바다로 나가며 이 마을을 통과하고 길을 익힌다. 누군가는 카페에 자리를 잡고, 누군가는 야시장에서 저녁을 먹는다.
규칙 없는 방향성은 오히려 바다를 극적으로 만나게 하는 역할을 한다. 골목길 끝에서 파도소리가 방향을 일러준다.
여행자들은 이 작은 마을의 지리를 자연스럽게 익히고, 설명 없이도 길 찾는 법을 익힌다.

비현실적 공간, 워터하우스
아난티 코브의 건물은 인피니티풀과 야외 풀장을 감싸듯 배치되어 있다. 객실에서는 바다와 인피니티풀이 항상 함께 보인다.
아난티 타운을 지나면 워터하우스에 도착한다. 인피니티풀을 그저 워터하우스라고 부르나 싶었는데, 문을 열어보니 하우스는 아늑한 집보다는 파티가 열리는 대저택을 의미하는 듯싶다.
바다와 이어지는 인피니티풀, 온천수를 이용한 여러 타입의 실내외 수영장, 노천탕까지. 실내와 실외를 자유롭게 오가는 동선을 따라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풀을 탐험하듯 거닌다.
직선과 곡선이 조화를 이루는 풀장들, 구불구불하게 펼쳐진 벽면, 그 위를 수놓는 미디어아트. 워터하우스는 바다와 더불어 또 하나의 비현실적 경험을 선사하는 공간이다.

해안산책로에서 바라본 아난티 코브
아난티 코브의 전체 모습을 보려면 약간 거리를 두어야 한다. 해안산책로를 걸으며 뒤돌아보면 그제야 여행하듯 둘러보았던 이 도시의 윤곽이 눈에 들어온다.
백색의 건물은 모두 바다를 향하고 있다. 푸른 바다가 유리창에 비쳐 건물에 바다가 담긴 것 같다.
아난티 코브는 마치 팔을 뻗어 감싸 안는 것처럼 인피니티풀과 야외 수영장을 품고 있다. 더 나아가 바다를 안으려는 것처럼. 건물의 입면은 객실 배치를 그대로 드러낸다.
테라스와 욕조 공간이 하나의 단위로 반복되며 패턴을 그린다. 자칫 딱딱해 보일 수 있는 이 패턴은 곡면으로 휘어진 매스, 바다를 향해 뻗은 워터하우스, 흩뿌려진 아난티 타운의 작은 건물들로 인해 부드러워진다.
해안산책로에서는 호텔로 쓰이는 아난티 앳 부산 코브뿐 아니라 아난티 프라이빗 레지던스와 펜트하우스들도 줄지어 보인다.
특히 햇빛을 고루 받기 위해 몸을 뒤로 뉘운 레지던스와 펜트하우스의 외관은 건축적인 의미가 있다.
기울어진 구조로, 상층부로 올라갈수록 뒤로 물러서며 모든 객실에 햇빛과 조망을 고르게 선사한다.

아난티 코브에 처음 도착했을 때, 나는 낯선 도시에 온 여행자였다.

거대한 백색 건물 사이에서 방향을 가늠하지 못했고, 리셉션이 10층에 있다는 것도, 바다로 가려면 작은 마을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그런데 하루를 온전히 머무르고 나니 물음표 투성이었던 공간들이 기억이 담긴 장소가 되어버렸다.
서점 이터널저니에서 어떤 책을 봤는지, 아난티 타운에서의 저녁 식사는 어땠는지, 워터하우스에서 물에 몸을 담그고 본 풍경은 어땠는지. 낯선 도시는 어느새 나의 기억이 새겨진 익숙한 도시가 되어 있었다.
어쩌면 이것이 아난티가 의도한 건축적 경험인지도 모른다. 단순히 바다가 보이는 객실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도시를 여행하듯 머물게 하는 것.
처음엔 낯설지만, 떠날 때쯤엔 골목길의 냄새와 파도소리의 방향까지 몸에 익어버리는 휴식.
아난티 코브는 여행자를 잠시 이방인으로 만들었다가, 마을 사람처럼 돌려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