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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난티 타임즈

KOREA, MARCH~APRIL 2024

MY JOURNEY, MY MOMENTS

Everything is Journey

마음 속으로 ‘여행’이라는 영어 단어를 생각해보자. 어떤 단어가 떠오르는가. 누군가는 트립(Trip)이 먼저 생각났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트래블(Travel)을, 또 어떤 이는 저니(Journey)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것이다. 모두 '여행'이라는 의미의 단어들이지만 이 말들은 서로 미묘한 차이를 지닌다. 트립은 보통 시작과 끝이 있으며, 일정 기간 동안 목적지에 머무는 여행과 휴가, 또는 출장과 관련된 짧은 여행에 쓰인다. 트래블은 트립보다는 긴 여행을 의미한다. 돌아다니고 이동하는 여행의 행위 자체를 말한다. 그래서 트래블은 여행 동사로도 사용된다. 마지막으로 저니는 어떤 의미를 지녔을까. 저니는 보통 트래블보다 더 긴 여행을 표현할 때 쓴다. 하지만 트립이나 트래블과는 다르게 목적지나 일정에 대한 제한이 없으며, 여행 자체를 깊이 이해하거나 경험을 강조하는 데 주로 사용한다. 그래서 저니는 ‘여행’보다는 ‘여정’이라는 단어가 더 잘 어울리는 키워드다. 우리가 여행을 하면서 얻는 특별한 과정, 개인의 감정을 뜻하기도 하고, 모든 과정과 성장을 비유하면서 쓰기도 한다. 하나의 예로, 스티브 잡스는 “The Journey is the reward(여정 자체가 곧 보상이다).”라는 말을 남기며 저니를 목표를 향한 과정의 의미로 사용했다. 이쯤에서 한번 생각해보자. 어쩌면 우리의 인생 자체가 저니가 아닐까. 일 년, 한 달, 하루,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저니인 건 아닐까. 어쩌면 저니는 우리의 삶 곳곳에 녹아 있으며, 살아가면서 기억했던 소중한 경험과 감정을 귀하게 여기는 단어다. 우리의 마음 속 기억으로 남아 있는 소중한 것, 그리고 그 소중한 경험을 위한 또 다른 여행을 떠나는 것. 그 모든 것이 저니라 말할 수 있다. 이것이 아난티가 이토록 ‘저니’라는 단어를 애정하는 이유다.

나의 저니, 나의 기억

생각과 일상의 조각들이 모여 ‘저니’가 된 이야기. 지극히 개인적일지라도 그 순간들은 우리에게 명백한 Journey(저니)였다.

My Weekday is a Journey
나는 오늘도 출근한다.

나는 평일이면 늘 여행을 떠난다. 햇수로 벌써 어언 9년쯤 된 것 같다. 나의 여행은 예측할 수 없어 매일 해도 전혀 질리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지만, 질리는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나의 여행은 출발 시간도, 여행에서 만날 사람도, 매일 던져주는 퀘스트도 다르다. 정말 흥미롭지 않은가! 이 글을 읽는 대다수의 직장인들은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이 여행이 어디를 향하는지, 어떤 길인지 말이다. 그렇다. 이 여행은 나의 출근길이다. 회사로 향한다는 목적지와 ‘출근길’이라는 주어를 제외하면 새로운 것을 쫓는 여행과 같다는 게 새삼 흥미롭게 느껴진다. 매일 다른 냄새, 온도, 습도, 사람들과 함께하는 지하철의 좁은 공간에서 나 역시 매일 다른 마음가짐의 다른 사람이 된다. 어느 날은 열정 넘치는 직장인이기도 하고 어느 날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와 같을 때도 있다. 이렇게 매일 다른 상황들로 넘쳐나는 데도, 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행의 이유>를 쓴 김영하 작가는 방송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오래 살아온 공간에는 상처와 근심이 있어 새로운 공간으로 떠나게 되면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다고 말이다. 매일 같은 일상에서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없는 건 집중력 문제가 아닌 것이다. 반복되는 일상에 지쳤다면, 깔끔하게 정돈된 호텔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 나의 마음의 소리에 집중하고, 몸과 마음을 리프레시 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출근한다. 근심, 걱정 없는 곳에서 누리는 나의 휴가가 더 값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 I


My Towel is a Journey
나에겐 좋은 수건을 고르는 것이 저니다.

일상에서 리프레시가 필요할 때 가장 먼저 수건을 바꾼다. 당장 하던 일을 그만두고 어딘가로 훌쩍 떠날 순 없으니,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쉬운 변화를 만드는 거다. 세균이 증식하니 일년에 한 번씩 수건을 바꾸는 게 좋다는 위생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른 아침 차가운 물로 씻고 난 뒤 늘 쓰던 눅눅한 수건이 아닌 부드러운 수건에 얼굴을 묻고, 보송보송 잘 마른 수건을 가지런히 개켜 서랍 한 켠에 넣어두는 일 따위가 생각보다 우리의 기분을 훨씬 나아지게 만든다. 또, 취향에 따라 좋아하는 색깔 혹은 패턴의 수건으로 욕실을 채우면 손쉽게 공간의 분위기까지 바꿀 수 있으니 인테리어 효과까지 덤으로 누릴 수 있다. 그래서 좋은 수건을 고르는 것이 중요하다. 수분을 얼마나 잘 흡수하는지, 피부에 닿는 감촉은 얼마나 부드러운지, 어떤 실을 사용하고 얼마나 중량이 높은지, 사이즈와 색깔은 어떤지 하나 하나 잘 따져보고 나에게 맞는 수건을 골라야 그 효과를 톡톡히 누릴 수 있다. 한 가지 팁을 주자면 수건을 고를 때는 실의 두께를 나타내는 ‘수’가 크고 중량이 어느 정도 나가는 수건을 고르는 것이 좋다. 높은 수의 실을 사용할수록 촘촘하고 흡수력이 좋으며, 중량이 많이 나갈수록 밀도가 높고 도톰하기 때문이다. 분명 매일 사용하는 물건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늘 반복되던 하루가 새롭게 느껴질 것이다. - T

My Wedding is a Journey
나의 저니는 프러포즈를 받던 그날부터 시작됐다.

저니라는 건 설레고 낯선 경험의 연속이라고 한다. 내 인생에서 설레고 낯선 경험의 연속이 뭐가 있을까 떠올려 보면 한 단어가 떠오른다. 바로 결. 혼! 결혼한 지 시간이 꽤 지났지만 여전히 낯설고, 매일 어떤 새로운 전개가 펼쳐질지 예상할 수 없어 설렌다. 매번 마주하게 되는 상황들이 놀랍도록 낯설고 신선하다. 세상에 이렇게 즐겁고 신나며 이따금 당혹스럽기도 한 여정이 어디 있을까? 나의 저니는 프러포즈를 받던 그날부터 시작됐다. 움칫움칫 두둠칫 귀가 멍해질 정도의 EDM이 나오는 펍에서 일생에 한 번뿐인 프러포즈를 받았다. 그리고 기쁨의 눈물이 아닌 분노의 눈물을 흘렸다. 어떻게 이런 곳에서 프러포즈를 할 수 있는지 내 기준과 가치관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장문의 프러포즈 편지도 있었는데 펍이 너무 어두워서 글씨조차 보이지 않았다. 결국 핸드폰 조명을 켜고서야 겨우겨우 그 편지를 읽어 내려갈 수 있었고, 편지를 읽으며 화가 나고 속상해서 눈물 콧물을 쏙 뺐다. (기쁜 프러포즈 자리에서 대성통곡을 하는 여자를 보며 남자도 꽤 당혹스러웠을 거라는 생각이 _이제서야_ 든다.) EDM이 꽝꽝 흘러나오는 펍에서 프러포즈를 한 남자의 변은 "프러포즈 자체가 너무 떨렸고, 내용이 중요하지 장소가 중요하지는 않다고 생각했어"였다. 결국 그 남자는 이튿날 남들이 프러포즈 할 때 모두 한 번씩은 거쳐간다는 호텔 라운지를 예약했고, 화려하게 빛나는 도시의 불빛을 발아래에 두고 다시 프러포즈를 했다. 우리 앞에는 와인 한 병과 치즈 플래터가 놓였다. 남자는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어제 받았던 그 프러포즈 편지와 오늘의 장소를 합성해서 기억해줘"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말이었지만 그 이야기에 웃어버렸다. 너무 화나고 낯설고 당혹스러운 경험이었지만 그 남자의 마지막 한 마디는 나를 설레게 했다. 결혼한 지 N년차, 요즘도 늘 이런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 서로의 생각이 달라 너무 낯설어했다가, 서로 얼굴 보며 웃으며 설렜다가. 나의 결혼 여정은 여전히 알다가도 모르겠고 그리고 또 재밌다. 나에게 저니는 결혼이다. - J

My Diary is a Journey
나의 여정은 달력이 잘못 표기된 다이어리를 산 순간부터.

2024년까지 얼마 남지 않았던 2023년의 12월, 평소에 자주 가던 카페에서 직접 제작한 다이어리를 세일하여 판매하고 있었다. 다이어리의 대목이었던 그때, 퀄리티도, 내용 구성도 모두 마음에 들었던 이 다이어리를 왜 세일하는가 보니 9월에서 10월로 넘어가는 먼슬리 캘린더에 숫자가 잘못 표기되어 있던 게 그 이유였다. (실제 다이어리를 사용하기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 다음 달의 날짜를 미리 알려주는 부분의 일자가 일괄 1로 잘못 인쇄된 거였다.) 세상에 몇 안 되는 특별한 다이어리를 가지게 된 나에게 2024년의 9월과 10월, 그리고 그 사이의 시간은 좀 더 특별해졌다. 절대 잘못되면 안 될 것 같은 것에도 흠이 있을 수 있고, 그 흠은 어쩌면 놀랍도록 일상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2024년이 흘러가고 있는 지금, 그 다이어리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매일을 함께해주고 있다. 그러니 나도 올 한 해의 여정이 두렵지 않다. 당연하게 여겨지는 걸 당연하게 여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친구가 옆에 있으니. 나의 다이어리는 현재 바쁘게 여행 중이다. - B

My Hoody is a Journey
나는 철저하고 과감하게 망해버렸고 후디를 쓰고 잽싸게 집으로 돌아왔다.

‘후디’ 하면 여러 가지 이미지가 떠오른다. 갱스터 힙합 뮤지션들의 필수템?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의 시그니처 옷? 실리콘밸리의 고액 연봉자들의 유니폼? 심지어 영화 <로키>에서 주인공이 혹독한 훈련을 할 때 입었던 후디를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후디’에 대한 기억은 중학교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그마한 아이가 입기엔 약간 무겁고 면은 꽤 두툼한 옷이었다. 하지만 난 그 후디를 좋아해서 빨고 나서 아직 다 마르지도 않은 모자 부분을 굳이 드라이기로 말려가며 매일 입었더랬다. 이유는 단순했다. 목 뒤에 달린 크고 깊은 후디를 푹 눌러쓰고 길을 걸으면 괜히 세상과 단절되는 힙한 기분을 느꼈기 때문이다. (여기에 캡 모자를 쓰고 헤드폰까지 목에 걸어주면 완벽!) 어느 날이었다. 당시 힙합 음악에 빠져 그라피티 아티스트가 되고 싶었던 나는, 후디를 쓰고 래커를 챙겨 압구정 한강 굴다리로 향했다. 그리고 굴다리에 낙서를 시도했다. 당시 그라피티 필드에서는 ‘국룰’이 하나 있었는데 기존에 있던 그림을 덮어 그리려면 무조건 더 잘 그려야 할 것! 하지만 의욕만 넘쳤던 비기너인 나는 아주 철저하고 과감하게 망해버렸고 그 길로 후디를 쓰고 잽싸게 집으로 돌아왔다. 어찌나 창피하던지 돌아오는 길에도 후디를 꾹꾹 눌러쓴 채 한동안 한강 압구정 굴다리는 쳐다도 보지 않았다. 그리고 20년이 흘렀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후디를 입고 모자를 푹 눌러쓴 채, 생애 처음으로 갖게 된 ‘내 집’에 페인트를 바르고 있다. (불가항력의 저니란 이런 것인가!) - 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