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OREA, MARCH~APRIL 2025

내겐 너무 까칠한 남해. 놓치지 않을 거예요.
나의 첫 남해 여행기. 기쁨과 좌절, 그리고 의식의 흐름대로 끄적이는 짧은 단상들.
#남해, 너와의 거리 382KM
서울부터 아난티 남해까지의 거리는 382Km이다. 마치 미국의 동서부를 가로지르는 로드트립을 떠올리며, 한반도를 세로로 가로지르는 자동차 여행을 떠났다.
30대 중반 언저리의 사람들이 모인 이 자동차 여행에서는 흥과 추억을 북돋아 줄 추억의 음악 플레이리스트는 필수다. 감성 터지는 옛날 음악을 듣다 보면 이야기꽃은 물론, 여행의 설렘도 2배로 터지는 기분이다.
신나게 달리다 보면, 하필 맛있는 거 가득한 전주 즈음에서 배가 고파온다. 우리의 차는 어느새고속도로를 벗어나 한옥 마을을 향한다. 이제 전주에서 뭐가 제일 맛있는지 찾아야 한다.
여행의 첫 끼니이니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을 골라도 맛있겠지만, 속을 든든하게 채워주는 따뜻한 국물 가득한 ‘순댓국’은 놓칠 수 없다. 정겨운 시장에 들어서 꼬린내 가득한 순대 국밥집에서 먹는 순댓국은 최고의 선택이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조금 더 달리다 보면 섬진강, 노량대교를 지나 곧 웅장한 바다를 마주하게 된다. 내 마음속 저 멀리 있던 남해에 드디어 도착했다는 뜻이다.
382Km 떨어진 남해는 생각보다 그리 멀지 않다. 집으로 돌아오는 방법이 무엇이든 남해까지 오며 마주한 도시의 풍경들이 몹시 아름답고, 그마저 여행의 일부가 된다.
#‘물초’한 여행이라 쓰고,
‘집 나와 고생이다’라고 읽는다.
내가 떠난 3월의 남해는 유채꽃과 벚꽃이 아름답다. 서울에서 보기 힘든 이 두 꽃의 만남은 정말 기대되었다. 계단처럼 이어진 좁고 긴 논이 있는 ‘다랭이 마을’에는 이 시기 유채꽃이 가득하다.
하지만 이런 나의 기대는 비가 뚝뚝 내리면서 와르르 무너졌다.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해 볼까 했지만 하늘은 이미 큰 구멍이 난듯했다.
굵은 장대비가 쏟아져 내렸고, 이내 남해의 날씨에 나와 일행들은 점점 젖어 들기 시작했다. 차에서 내릴 때도 흠뻑, 차를탈 때도 흠뻑, 밥 먹으러 가는 길에도 몸이 흠뻑 젖어온다.
우산이 무슨 소용이며, 맑은 남해는 대체 언제 볼 수 있는 것인가. 날씨 요괴들이 모인 게 분명했다. 까칠한 남해는 다음 날에도 미세먼지 가득한 하늘을 선물했지만,
아직 낯가리는 중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다음에 갈 땐, 밝은 해도 준비해 줘(웃음)
*물초; 온통 물에 젖음. 또는 그런 모양.
#남해여행의 베이스캠프,
아난티 남해 펜트하우스A
아난티 남해에 들어서는 순간 바다와 마주한 그 풍경에 놀라지않을 수 없었다. 체크인하러 들어선 클럽하우스부터 남해 특유의 푸르고 웅장한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바다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펜트하우스는 유연한 곡선의 건축이 눈을 사로잡는데 충분했고, 서로의 거리가 멀찍이 위치해 투숙객들의 사생활을 철저하게 지켜주는 것 같았다.
나는 펜트하우스 A에 머물렀다. 이곳의 객실은 거실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침실과 화장실이 마주 보고 있기 때문에 두 부부가 한 방에 묵었음에도 독립적으로 서로의 공간을 사용할 수 있었다.
방과 방 사이에 있는 하나의 거실은 여럿이 놀기에도 충분히 넓어 맛있는 밥을 먹거나 이야기를 나누기에 딱 좋았다. 이 거실은 이제 우리 여행의 베이스캠프가 된다.
앞으로 떠날 여행지를 논의하고, 맛있는 음식과 이야기를 나누는 편안한 집을 닮은 공간이다. 고즈넉한 남해마을과 바다, 골프장 전경이 조화롭게 어울리는 뷰는 이 베이스 캠프의 가장 큰 장점이다.
우리가 함께 있는 이곳이 서울이 아닌 남해, 일상이 아닌 여행 중이라는 뜻이니까.
#파워J의 아난티 남해 파헤치기
새로운 지역에 여행을 가면 갈만한 곳들부터 파악부터 하는 편이다. 하지만 아난티 남해에 도착한 순간, 첫날은 아난티에서 나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왜냐하면 여기엔 우아하게 식사할 수 있는 레스토랑부터 배가 고플 때 급하게 응급처치를 할 수 있는 편의점, 편안한 휴식을 위한 카페, 마음의 양식과 소비의 양식을 채워 줄 서점까지 (거짓말 조금 보태서) 없는 거 빼고 다 있다.
호텔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조식 뷔페 ‘르블랑’은 오후 1시까지 이용할 수 있는 데다 아침부터 해산물, 고기, 샴페인 등 맛있는 음식으로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다.
(특히 모닝 샴페인은 너무 좋았다) 매주 토요일마다 저녁 뷔페도 운영하고 있으니, 토요일에 떠난다면 사전 예약은 필수다. 아난티의 시그니처 ‘이터널저니’에서는 아난티가 큐레이션 한 책들과 소품, 의류 등을 만날 수 있다.
이터널저니의 꿀팁은 국내에서 쉽게 접하지 못한 브랜드들이 많은 데다, 아기자기한 디스플레이는 아이쇼핑마저 기분 좋게 만들어 준다. 지하에는 카페와 식료품관이 있어 아난티 로스팅 커피와 맛있는 간식거리를 구매할 수 있다.
빨간 아치 벽돌이 인상적인 워터하우스는 아름다운 남해의 일몰을 바라보며 수영을 할 수 있다. 수영을 마치고 나왔을 땐 ‘워치유어스텝’의 고소한 빵냄새가 은근히 기분을 좋게 만들 것이다.
#남해는 독일만큼
멀지 않아!
독일마을이 있는 남해는, 나에게 어쩌면 독일만큼 먼 곳이 아니었을까?
따뜻한 남쪽으로 떠나는 여행의 선택지에는 대체로 부산과 제주도 뿐이었으며, 핫하다는 여수만 간혹 추가될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해가 예쁘다는 것은 익히 들어 잘알고 있었다는 게 아이러니이다. 마치 독일을 옮겨온 듯한 유럽 풍의 독일 마을,
그리고 조그마한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미국 마을, 산꼭대기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보리암까지 이색적인 볼거리는 덤이다.
거기다 남해의 특산물 멸치를 활용한 멸치 쌈밥에 소주 한 잔을 더하면 그야말로 금상첨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