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OREA, MAY~JUNE 2025

영화 같은 하루, 부산에서
노을이 물들던 3월의 부산. 기장 해안도로를 따라 빌라쥬 드 아난티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친구와 함께 떠난 여행이라 마음이 들뜨고 가벼웠다.
로비에 들어서자 창밖 너머로 멀리 바다가 보였고, 따뜻한 인사를 받으며 체크인을 마쳤다.
우리가 머무를 객실은 스프링하우스. 문을 여는 순간, 고요한 분위기가 반겨줬다. 넓은 공간, 우드 톤 인테리어, 은은한 조명까지.
한쪽에는 히노끼탕이 마련되어 있었고, 물이 천천히 차오르는 소리가 조용히 퍼졌다.
여행의 시작을 실감하며 친구와 마주 앉아 따뜻한 차를 한 잔 나눴다.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 그날 밤은 그렇게 조용히 흘렀다.
다음 날 아침, 해가 뜨기 전 눈을 떴다. 준비를 마치고 차를 몰아 해동 용궁사로 향했다. 숙소에서 멀지 않아 금세 도착했다.
절 입구에 들어서자 시원하게 부서지는 파도 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아침 햇살이 천천히 절벽 위 사찰을 비추고 있었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 다리를 건넜다. 마당 곳곳엔 연등이 살랑이고, 바다 너머로 짙은 동해가 펼쳐졌다.
잠시 눈을 감고 각자의 바람을 마음에 담았다. 부산에서의 하루를 이렇게 조용하게 시작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특별하게 느껴졌다.
해동 용궁사를 나와 우리는 해운대로 향했다. 걷다 보니 바다가 정면으로 보이는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창가 자리에 앉아 따뜻한 드립커피와 함께 작은 쿠키를 곁들였다. 눈앞으로 넘실대는 바다를 바라보며, 서로 말없이 앉아 있는 그 시간이 좋았다.
“이게 진짜 여행이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은 시간.”
친구의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멋진 장면을 만들지 않아도 충분한 날.
커피 한 잔이면 괜찮은 그런 오후였다.
저녁은 해운대 끝자락의 바다마을 포차 건물에서 먹기로 했다.
해운대 포차 거리의 사장님들이 모두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수족관 속 싱싱한 해산물이 반겨줬다.
애피타이저로 상큼한 토마토와 오이 슬라이스가 먼저 나왔고, 이어 산낙지, 멍게, 해삼, 전복이 하나씩 차려졌다.
하이라이트는 랍스터 회. 탱글하게 오른 살을 한 점 집어 입에 넣자 바다 향이 퍼졌다.
소주잔을 가볍게 부딪히며 “이 집, 오래될 만하네” 하고 웃었다.
식사가 끝날 무렵엔 랍스터로 끓인 라면이 나왔다. 국물까지 깔끔하게 비웠다.
밤이 깊어갈 무렵 다시 아난티로 향했다. 라디오에선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창밖으로 스치는 불빛이 오늘의 여운처럼 지나갔다.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고, 나는 곧장 히노끼탕으로 향했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자, 온종일 걸었던 길과 대화들이 조용히 떠올랐다.
“진짜 좋다.”
혼잣말처럼 흘러나온 한마디.
화려하진 않았지만 마음이 채워진 하루.
이 봄날, 부산에서의 하루는
오래도록 꺼내볼 장면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