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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난티 타임즈

KOREA, JUNE 2021

뜻모를 고난이 닥쳐도 삼악산의 돌숲은 언제나

가뭄이나 홍수 같은 이해 못할 재난이 닥쳐도, 결국 다 겪을 만했다고, 삼악산의 돌숲은 오늘도 건재하다.

수직 절벽에 몸을 숨긴 그들의 이야기

거대한 산이 반으로 나뉘던 때가 있었다. 빙하 시대에 형성된 협곡은 여전히 깊게 패어서, 그 풍경을 보기 위해 폭좁은 길로 수많은 발걸음이 모인다. 육산 몸뚱이가 이고 있는 3개의 돌산들. 용화봉(654m), 등선봉(632m), 청운봉(546m), 주요 봉우리가 3개라서 이름은 삼악산(三岳山). 우리나라 5대 악산 답게 산세가 제법 거칠고 험하다. 등산로 코스는 약 5km 구간으로 길지는 않지만 암릉길이기 때문에 산행은 4시간 안팎 걸린다. 삼악산은 전쟁의 상흔이 배어 있는 아픈 땅이다. 부족 국가였던 맥국(貊國)이 적의 침공을 받은 이후 숨어들어 최후까지 저항했다 전해진다. 기와를 구워 궁궐을 짓고 살며 나라의 재건을 염원했으나 끝내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 이후 태봉을 일으킨 궁예가 왕건에게 패하여 패잔병을 이끌고 피신처로 삼았다는 구슬픈 사연도 가졌다. 내 몸 하나, 나아가 국가가 외세를 피하고 훗날을 도모할 수 있으리라 믿을 만큼, 절벽 요새를 이룬 산세가 뜻하는 바는 고립이자 위안이다.

바위가 허락하는 곳으로

의암 매표소와 등선폭포 입구 두 곳이 들머리, 날머리 역할을 모두 하는데 의암 매표소 발 등산로가 좀더 수월하다. 여기서 정상까지 코스가 급경사 바위 지대라 하산하기 힘에 부칠 수 있어 차라리 오르는 편이 낫기 때문. 경사가 70도에 육박해 2시간 가까이 고투 끝에야 정상에 이를 수 있다. 일반적인 등산로가 인간이 걸을 수 있게 인위적인 동선을 냈다면, 삼악산은 자연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스스로 길을 개척해야 한다. 이정표는 명확하나, 발자국 흔적이 뚜렷하지 않아서 앞선 이의 선택을 그대로 따르긴 어렵다. 내 몸을 지탱해줄 움푹한 바위를 고심해 고르고 양손을 이용해 온몸으로 올라선다. 바위에 꽂힌 쇠말뚝을 타고 암벽 옆구리를 걷고, 울창한 노송의 뿌리는 밟는 대신 손으로 잡고 오른다. 정상부도 일반적인 평지 대신 뾰족뾰족 돌밭이다. 그럼에도 바위 속에 삶은 있어서, 틈새마다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고사리 군락들을 마주하며 걷게 된다.

지구의 틈 사이를 거닐며

푸른 식물 한 포기 내지 않는 불모지는 아니지만, 이곳은 나무보다 돌기둥이 키가 더 크고 풍경의 주도권을 돌이 가지고 있다. 빙하 시대부터 줄곧 자리를 지키다 온 세상에 드러나기까지 숨 죽이고 모든 세월을 버텨온 땅과, 자존감처럼 곧은 돌기둥들을 만날 수 있다. 왕성하게 살아 있는 5개의 폭포 덕분에 협곡은 밤낮 외롭지 않다. 바위틈을 따라 쏟아지는 계곡물이 워낙 맑아 그 여파로 모든 풍경이 깨끗하다. 선녀가 한바탕 놀았을 법한 선녀탕, 용이 승천을 위해 잠시 숨을 고르는 터로 삼았을 비룡 폭포. 대표 폭포인 등선 폭포는 윗물과 아랫물 낙차가 10m 이상의 높이로 폭포수가 물보라를 피워내며 떨어진다. 단풍나무, 물푸레나무, 굴피나무, 참나무들이 계곡 사이 서로 어울려 자라는데, 허리가 워낙 두꺼워 나무 옆구리의 잔가지들 만으로도 길에 볕이 들지 않아 시원하다. 하얀 포말을 내는 물줄기는 나무와 만나며 두 갈래 세 갈래 찢어져 물의 흐름에도 리듬이 생긴다. 귓전을 맴도는 강물 소리, 아직까지 사람의 발길이 미치지 못했을 숱한 절벽을 눈앞 가득 두고, 험준한 자연에 순복하며 오르고 내린다.
* 강원 춘천시 서면 경춘로 1401-25
* 가평 아난티 코드에서 차량으로 약 50분 거리 (46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