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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난티 타임즈

KOREA, MARCH~APRIL 2022

너라는 계절은 구좌에서 시작했다

“여기에 뭐가 있긴 있는 거야?” 제주 구좌읍의 꼬불꼬불한 산길을 어리둥절하며 지나고 있을 무렵, 소중한 시간을 내서 제주도까지 왔는데 운전만 실컷 하다가 서울로 돌아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으로부터 8년 전, 유명 연예인들이 하나 둘 제주도에 집을 지어 내려와 산다는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던 때의 이야기다. 지금은 아무런 여행준비 없이 떠나도 인터넷에 ‘제주 맛집’만 검색하면 수많은 정보가 넘쳐 흐르지만 그 당시엔 출발 전에 제법 발품을 팔아야 ‘찐맛집’을 찾을 수 있었다. 내가 가장 신뢰할 수 있었던 정보는 ‘제주 로컬이 추천하는 곳’ 이었다. 나는 서울에 살다가 제주에 집을 짓고 사는 제주도민에게 여행지를 추천해달라고 하였고, 그녀는 나에게 ‘구좌’라는 지역을 말해주었다. 그 당시 제주의 여행 순위(소위 ‘핫하다’고 말하는)는 건축학개론으로 유명해진 제주의 남쪽바다 위미리, 이효리 이상순 부부가 살았던 제주의 북서쪽 애월, 에메랄드 바다가 있는 이국적인 협재와 금능 등 잔잔하고 아름다운 바다가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지도에서 찾아본 구좌는 낯선 곳이었다. 제주의 동북쪽에 위치했고, 해변보다는 숲의 기운이 가득한, 그렇다고 한라산과 가깝지도 않은 애매한 내륙에 위치해 있었다. 구좌에서 유일하게 아는 곳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비자림’뿐이었다. 물론 비자림으로 가는 길은 자동차 광고에도 많이 나오는 516 도로를 지나야 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비자나무 2,800여 그루가 밀집되어 있고, 한 그루당 무려 500년~800년 정도의 수명을 가지기 때문에 고려시대에 태어난 나무들이 있는 ‘천년의 숲’이 있다. 하지만 지금 와 생각해보면 비자림과 구좌는 서로에게 속해 있지만, 전혀 다른 카테고리에 있는 느낌이다. 내가 느낀 비자림이 ‘엄청 강력한 상쾌함’이라면 내가 만난 구좌는 ‘그냥 제주 동네’였으니까.

앞서 말했듯 구좌는 “왜 여기를 추천한 거지? 여기에 뭐가 있긴 있는 거야?” 라고 말할 정도로 구좌는 심각하게 고요한 동네였다. 너무 한적하고 평온해서 시간까지 천천히 가는 느낌까지 들 정도로. 높은 건물이 하나도 없어 그 어떤 것도 시야를 가리지 않은 채 하늘을 볼 수 있고, 살랑 불어오는 제주 바람은 아무런 방해물 없이 까만 돌담에 닿는다. 담 너머로 초록의 밭이 펼쳐지며, 그 싱그러운 밭과 밭 사잇길로 우리가 지나간다. 양쪽으로 밭이 있는 길은 ‘낱물받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데 오늘날 구좌읍을 지나는 올레길에 포함되어 있다. 시간이 멈춘 듯한 이 한적한 동네엔 현대 기술로 만든 관광지가 거의 없다. 길이 있고, 오름이 있을 뿐이다. 어떤 이는 북동쪽 끝에 있는 구좌의 바다 마을 하도리를 가리켜 ‘가장 제주다운 바다 문화와 풍경을 간직 곳’이라 칭했다. 하도리로 가는 길엔 제주의 상징 밭담길을 지나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성 별방진도 볼 수 있다. 별방은 하도 리의 옛 지명. 예쁜 이름을 뒤로 한 채 주목도가 낮았던 구좌의 바다는 아껴왔던 시간만큼 제주가 지녔던 장면들이 오롯이 남아 있는 곳이다. 지금까지 제주에서 수많은 시간을 보내왔지만, 난 여전히 제주를 떠올리면 8년 전 느낀 구좌가 가장 먼저 구좌가 생각난다. 심장처럼 생명력 넘치는 숲을 품고도 아무렇지 않은 듯 평범한 시간이 흘렀던 곳. 그래서 제주의 경험이 가장 제주스럽게 남아 있는 곳. 나의 제주는 구좌에서 시작했다.

AT.
빌라쥬 드 아난티 제주는 아름다운 구좌읍 김녕리의 약 63만 평 부지를 2024년(목표)까지 완전히 새롭고 차별화된 플랫폼으로 조성할 계획입니다.